
천문학자들이 별을 보지 않는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홉 자란의 랩걸을 떠올린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랩걸보다 더 공감하며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천문학자의 고민 속에서 우리와 공통되는 고민이 언뜻 보인다. 거기에 연구만 하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기 분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답답한 학자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캐릭터가 보인다. 글 곳곳에 감춰진 문학과 영화, 음악과 대중문화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참석자 가운데 유일하게 할 일이 없는 학부생인 나뿐이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태양에서 IAU 거리에 있는 지구에서 5AU 거리의 목성으로 순간 이동하는 주문을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저예요!” (P.19~20)
나는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언제라도 온다고 믿는다. 나도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손을 든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네!”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두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두 번째 접니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나도 그런 시간을 보내왔다. 나는 그녀처럼 대단한 과학자라도 유명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내 앞에 온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나는 저자를 잘 모르지만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간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아주 쉽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이 책은 잘 읽힌다. 과학적 지식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삶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한국에서 과학자로서 살아가는 삶이 잘 그려져 있다. 특히 마음에 와닿은 부분은 한국의 많은 기록에 남아 있는 천문학적 관찰 기록을 이야기하는 부분, 이소연 우주인의 이야기, 그리고 학생이 쓰는 방법에 대한 부분이었다.
학문은 정연한 기록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발견한 물건이나 실험한 내용, 조사 결과와 그에 대한 생각 등을 잘 정리해 이름, 날짜와 함께 기록해 두면 나중에 누구나 이를 참조해 재현하고 여기에 새로운 부분을 덧붙여 다시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다른 학자들이 흉내 냈을 때 같은 결과가 재현되도록 레고 조립 매뉴얼처럼 정확하고 자세해야 한다.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키우기 위해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먼 곳에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 편지 형식을 취한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에 다른 사람이 발견, 연구, 논했던 내용을 정확하게 밝히고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 보이게 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 쓰는 것이고, 남의 필사는 타자 연습할 때 하는 일이다.학문할 때의 글은 형식도 갖춰야 한다.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그야말로 ‘누구나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가 이미 갖추고 있는 명성이나 영향력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읽히고 판단되는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뛰어나도 형식만은 분명해야 한다. 이 연구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면 마침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적지 않다. 시적 허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학생이라면 학문적 글쓰기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문적인 글쓰기는 유려한 글쓰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연구 내용이 무엇이든, 글이 서툴러도 남의 것을 베껴 10쪽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보다 한두 쪽이라도 자신이 가서 생각한 내용을 형식에 맞게 쓰는 것이 더 지적인 활동이다. 그것이 대학의 모든 강의에서 공통적으로 배우는, 혹은 배워야 할, 대학생으로서의 기본 소양이다.( P . 58 – 60
조금 길게 인용했다. 이 내용은 대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작문도 마찬가지다. 문서를 작성하면 그 문서는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힘들게 만든 문서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현학적인 표현으로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학교에서도 글짓기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직장에서도 같은 실수를 한다. 기안서와 제안서를 쓰고 계약서를 쓰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 이과생의 쓰기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문과생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막연하게 길어진 글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시적 허용이 필요 없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감성적인 단어들을 섞어 놓기도 한다.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문장, 무엇을 기안할지 제안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문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학원생들은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나도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제 집중을 하려는데 집에 갈 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선뜻 오도가도 못 한다. 생각하면 뛰쳐나오지 않는 날은 드물다. 왜 항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일어서는지. 엄마는 항상 뛰어다닌다. 그렇게 퇴근한 날은 보던 논문과 책이 책가방에 가득 차 있었다. 부모 노릇도, 연구자로서의 노릇도 절반 정도밖에 못하는 날이다. ( P . 77 )
이글을읽는것이매우공감이됩니다. 읽다 만 책과 자료를 잔뜩 들고 오느라 핸드백이 아니라 무거운 백팩을 신어야 했고, 예쁜 구두보다 투박한 운동화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저자가 아이를 재우고자 했던 바람과는 달리 잠이 들었던 것처럼 나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위킹맘은 크고 작은 관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주인 이소연에 대한 평가는 가슴 한구석에서 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소연이 남자였다면 그런 평가를 받았을까. 부모 중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잠시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P.107) 엄마의 의무가 아니다.
저자의 글에는 한국 우주과학의 미래를 위한 애정이 배어 있다. 우주탐사에 관한 정책은 별다른 정치색을 띠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 과학자 집단에 요구하는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와 국민생활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를 선별해 달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과학이든 기술이든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혈세 낭비라고 몰아세우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공은 자신들에게 돌리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의 억지 선동)를 흔히 볼 수 있는데.저의 기우이길…
우주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저자는 비전을 제시하는 자문단도,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도, 그것을 승인하는 최고 결정권자와 국회, 공무원, 그리고 우주탐사를 지지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주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우주탐사가 늦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신 있게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글쓰는 사람으로 문학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