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본다

한 행성 과학자의 에세이 그가 보는 우주와 그의 우주를 보았다.

전혀 다른 분야의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좁고 깊은 세상이, 책을 통해 맛본 새로운 세상이, 책을 통해 향유하는 넓은 세상이 좋다. 어쩌면 평행우주에만 존재하는, 다른 결과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어서 좋다. 만약 내가 천문학자의 꿈을 더 오래, 더 깊이 꿨다면 가끔 별을 보고 매일 분석 자료를 보는 삶을 살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다.(그때도 불가능한 일) 이 우주에서는 내가 좋은 교사로 사는 것도 매일 힘들다.

어제 <어린왕자>를 읽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다. 제가 수금지화목 토천해명의 ‘명’이 퇴출됐을 때 너무 슬픈 마음으로 독후감을 써서 과학의 날 상을 받은 것도 운명이다. 영월 천문대에서 토성을 구경한 가슴 벅찬 오름을 잊지 않고 사이판 능선에 올라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쏟아지는 별을 온몸으로 받아보고, 할머니 댁 앞마당이 사이판보다 낫다며 매년 여름 달라붙는 모기를 물리치고 별을 하염없이 바라본 것도 운명이다. 직업적성검사에서 (단 한 번뿐이었지만) 천문학자가 1위를 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당시 외교관 또는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던 내가 과거가 아닌 외고에 빠진 것을 가끔 후회하는 것도 운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미래에 나는 어떤 책을 쓸지 구체화해보는 것도 운명이다.이러려고 이렇게 된 거야. 다들 그러려고 했단 말이야. 누구나 과거를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현재 상황에 맞는 것만 골라 재편한다는데, 내 인생에 별이 남들보다 한 걸음 정도 가까이 있는 것 같아 내심 기쁘다.

이 세상의 모든 과학자를 동경하다. 인류 발전에 벽돌 한 장씩 쌓아 올리는 이들이 부럽다. 인문학 전공자이자 교육자인 나는 어떤 벽돌을 실을 수 있을까.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가능할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가진 국어 선생님으로서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의 질감을 느끼는 작은 과학자를 키운다면 이것으로 우주를 탐사했다고나 할까.작가님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물론 우주를 사랑하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앤돌얀을 위해서.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으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하나의 기쁨이었다.

H, 책의 맨 첫 페이지에 있다는 이 문구를 알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마냥 읽고 싶어했지만 과학고등학교에서 <코스모스>로 국어 수업을 하셨다는 꼭지를 읽고 연구도서로 구입했는데 책상 정리를 겸해 학교에 들러 그 두껍고 무거운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 오늘이었던 것 역시 운명이다. 내가 우주를 사랑하는 운명.

2022.07.28.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볼 때 저게 뭘까 하는 생각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다툼을 낳지 않는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TV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 삶의 방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것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리는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 우주 전체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p.13

여러 길로 나뉜 평행우주 속에서 용감하게 떠난 나와 용감하게 남은 나, 모두를 칭찬한다. p.32

나를 더욱 곤란하게 하는 것은 내가 어떤 대단한 계기로 천문학을 선택한 것도, 어릴 때부터 꿈을 이룬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저마다 삶의 흐름이 있는 것이고, 저는 삶을 따라 흐르면서 살다 보면 지금 이러고 있다. 어느 분야를 가든 대학원은 다닐 생각이었기 때문에 평행우주 속의 나는 지금쯤 생물학자나 영문학자나 고고학자다. p.145

나에게는 ‘되고 싶었던 나’와 ‘되어버린 나’가 있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를 재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항상 매우 미묘해도 마음이 쏠려 별로 후회하지 않을 만한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의 문제가 99와 1이었다면 얼마나 쉬웠을까. 시험지로 정답을 고를 때처럼 확실한 답이 있길 바랐지만 인생이라는 문제의 선지는 매력적인 오답 투성이였다. 선택을 나누는 숫자는 보통 51과 49였다.한 정도 기울어진 마음과 한 정도의 후회를 늘 안고 살아왔다. 정답도 오답도 없었다. 인생은 누군가 유도한 답을 맞히는 시험이 아니라 뒷말이 모두 백지인 소설책을 제멋대로 채워가는 창작의 과정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가끔은 그것을 잊고 선택을 어려워한다.

약간의 기운이 모여 지금의 ‘되어버린 나’가 있다. 1은 새하얀 설원에 작은 눈방울을 굴릴 때처럼 몸을 부풀려 내 인생의 전부가 됐다. 크고 탄탄한 하나의 눈사람을 갖는 것도 좋지만 몇 개의 작고 귀여운 눈사람을 만들고 사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도저히 만들 수 없었던 눈사람은 평행우주 속에서 당근 코를 가진 눈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끔 ‘되고 싶었던 나’를 그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금의 눈사람을 굴린다.

슬럼가에서 태어나 자란 소년 자말이 퀴즈쇼에 나와 우승하는 영화 ‘슬램독 밀리어네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p.25

자말은 어떻게 퀴즈쇼 결승에 올랐을까.”

A. 부정행위를 했다. B. 운이 좋았다. C. 천재다. D. 모든 것은 운명이었다.

작가님, 저도 운명을 믿습니다.

그래서 일몰을 다시 보려면 의자를 앞으로 당겨 태양을 향해 다가가야 한다. 해가 지평선 위로 조금 올라갈 때까지. 그 후 다시 의자에 앉아 해가 지는 광경을 감상하면 된다. (중략) 내가 어린 왕자라면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 소행성이 자전하는 속도에 발맞춰 지평선 위에 살포시 걸려 있는 태양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노을 속에서 더 이상 슬퍼지지 않을 때까지. p.160

해가 지는 것을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나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왜 슬픈지 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은 것이 43번째인지 44번째인지를 추궁하지 않고 1943년 프랑스 프랑의 환율도 듣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가 슬플 때 바로 해가 지도록 명령할 수는 없지만,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준다. 천문학자가 생각보다 꽤 도움이 된다. p.165

어제까지 읽은 책이 <어린왕자>였기 때문에 그것도 영어판이었기 때문에 금방 펴질 수 있었다. 이게 운명이 아니면 뭐라는 거야?

항상 의자를 뒤로 밀면서 노을을 44번이나 보는 어린 왕자를 머릿속에 그려왔는데 설명을 읽으니 노을 방향으로 의자를 당겨 앉는 게 맞다는 걸 깨달았다. 과학적 고증 때문에 소설에 몰두하기 어렵다는 이과와 어딜 가나 맞춤법 때문에 감동이 파괴된다는 문과 중 어느 쪽이 망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둘 다 망하지 않고 함께 세상을 유리하게 만들고 싶어요. 확실히 영어판에는 move라고만 써있어.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림은 어린왕자가 의자를 뒤로 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번에 어린왕자를 다시 읽고 가장 감동받은 부분은 사실 여기였다.

“And at night y ou will look up at the stars. Where I live everything is so small that I cannot show you where my star is to be found. It is better, like that. My star will just be one of the stars, for you. And so you will love to watch all the stars in the heavens… they will all be your friends. And, besides, I am going to make you a present…””All men have the stars, but they are not the same things for different people. For some, who are travelers, the stars are guides. For others they are no more than little lights in the sky. For others, who are scholars, they are problems. For my businessman they were wealth. But all these stars are silent. You-you alone-will have the stars as no one else has them-“”In one of the stars I shall be living. In one of them I shall be laughing. And so it will be as if all the stars were laughing, when you look at the sky at night… you-only you-will have stars that can laugh-“

어린왕자의 별은 너무 작아서 우리 눈으로는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밤하늘에 있는 별들은 모두 우리에게 어린왕자의 별들이다. 나는 하늘을 볼 때면 어린왕자를 생각하고 어린왕자는 그 속에서 선물처럼 웃고 있기 때문에 이제 나는 하늘을 볼 때마다 웃을 수밖에 없다.고대부터 사람들이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은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별자리부터 바스킨라빈스의 어머니는 외계인까지. 별을 보는 인류의 마음에는 그리움과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먼곳에서도 유일한 너를 생각하는 유일한 내가 있어’

아직 어린 왕자의 별이라고 해야 할지, 소행성이라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보면 책을 열심히 읽고는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별은 아니지만 어감상 별을 채택했다. 나는 문과니까.

Q1. ‘유니버스’ ‘코스모스 cosmos’ ‘스페이스 space’는 모두 한국어로 ‘우주’로 번역된다. 뭐가 다른가.

우리가 은하나 성단이니까 말할 때 쓰는 ‘우주’는 ‘유니버스’다. 별과 먼지와 행성과 우리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과 상황과 환경이다. 유니버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그 자체로서의 우주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주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다. (중략) 빅뱅 이론처럼 우주가 어떻게 태어나 진화했는지 알아보는 분야를 ‘우주론 comology’라고 한다.

컴퓨터 자동판매에도 있는 공간은 키보드와 다름없이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특히 인류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 같은 인공물체를 보내 탐사하는 공간을 가리킨다. 인공물체가 도달한 우주공간의 범위는 과거 40여 년간 크게 확장됐다.(중략) 우리의 우주는 매일,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p.40~1

‘우주’를 정의하는 단어의 의미를 정리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환경으로서의 우주, 조화로운 우주, 공간으로서의 우주. 세 우주를 모두 포함하는 ‘우주’라는 단어가 더 넓게 느껴졌다.단어의 줄거리에 외래어가 한국어에 포함되는 이유는 그 사물이나 현상을 나타내는 적합한 단어가 한국어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학문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매우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나 새로운 한국어를 만드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 시인이셨구나.

+) 추천사까지 이렇게 써주시면 제가 감탄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과학책이라기보다는 문학책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천문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문학은 문학이니까. – 김상욱, 이론물리학자

천문학이 인간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끈질기게 생각해 온 것이 분명한 저자는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우주를 사랑한다.(중략) 일기를 쓰는 천문학자의 시야가 넓고 보폭이 정확한 글을 읽고 확신이 섰다. 일이 세상을 만든다면 우리에겐 직업에 관한 더 많은 글이 필요하다.”-김혜리, 씨네21 편집의원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