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뉴기니

2022년 12월 25일<오세아니아>파푸아 뉴기니 파푸아 뉴기니 독립 국가는 남 태평양에 있는 뉴기니 섬의 동쪽 절반과 주변 섬으로 구성된 입헌 군주국이다. 동남아 국가 연합(ASEAN)의 특별 옵서버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에 속한다. 호주 북, 솔로몬 제도 서쪽, 인도네시아 동, 미크로네시아 연방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비백인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로 영국 연방 왕국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최대 면적의 나라다. 수도는 포트 몰스비ー이다. 국기는 1971년 7월 하루에 제정되었다. 가로 세로가 3:4의 비율로 적과 흑이 사선으로 칠해진 깃발이다. 호주 유엔 통치령으로부터 독립을 앞두고 열린 공모전에서 프랑스 미술 교사 수잔·카리케…흐흐흐 메일이 디자인했다. 붉은 바탕에는 뉴 기니아의 마스코트인 노란 색으로 그린 극락조의 실루엣이 있다. 검은 바탕에는 호주 국기와 같은 남 십자성이 그려지고 있다. 적과 흑은 파푸아 뉴기니의 전통 색이자, 빨강, 검정, 노랑의 조합은 1918년까지 지배했던 독일 제국의 깃발의 색이다.

그림 186 파푸아뉴기니의 국기(왼쪽)[1]와 날개짓하는 작은 극락조(오른쪽)[2]

지역은 섬지역의 아이 란즈 북부 모마세, 산악 지역의 하이 란즈, 파푸아로 나뉜다. 그리고 21개 주와 수도(내셔널·캐피탈·지역(그림 중의 20)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북으로 갈라져중앙 산맥, 비스마르크 산맥이 있다, 동쪽은 오웬·스탠리 산맥이 있다. 산맥의 정상에는 4073미터의 빅토리아 산이 있다.

그림 187 파푸아뉴기니의 지방[3]과 물리적 지도[4]

파푸아라는 이름은 말레이 말로 멜라네시아인의 곱슬 머리를 일컫는 말로, 뉴기니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기니 만 연안의 주민들과 닮았다고 생각하고 바른 것이다[5]. 파푸아 뉴기니의 북쪽 절반은 19세기 말 독일령 뉴기니가 됐다. 제일차 세계 대전 중 이 지역은 다시 호주군에 점령됐다. 파푸아 뉴기니의 남쪽 절반은 영국령 뉴기니로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호주에 1905년 이양된 파푸아 보호령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제이차 세계 대전 후 두 영토는 파푸아 보호령으로 통일되어 그 후”파푸아 뉴기니”으로 불리며 1975년 9월 16일에 호주로부터 독립한[6]. 독립 당시 산업은 4C, 즉 코프라(copra), 커피(coffee), 코코아(cocoa), 동(copper)이 주로 종이었다. 현재는 시중 화폐 경제와 촌락부 자급 자족의 이중 구성으로 광업이 수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외 채무는 07년 12월 31일의 전차로 18억 1400만달러로 GDP의 30%이다. 그래서, 헤세이 30년 교사에 대한 급여 미지급 사태, 국제 회의에 동원된 경관과 병사에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국회 의사당이 습격당하는 등의 혼란을 겪었다[7]. 파푸아 뉴기니는 열대 우림이라 밭 농사가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야자 재배는 적합하며, 코프라와 코프라를 압착하는 야자유는 모두 세계 6위 규모다. 시 이외의 공업은 국내 시장이 작고 수송 인프라의 문제가 있어 소작농에 그쳤다. 2002년 시점의 수출액 15억달러 중 70%이상을 광물 자원 거래가 차지하고 있어 파푸아 뉴기니 경제에 있고 광업은 중요한 부문이다. 상위 3개는 금, 석유, 구리이다. 화학 공업, 금속 정련은 모두 미성숙하고 전량, 정제 상태로 수출되고 있다. 광업의 주축은 우선 금과 구리에서부터 1992년에 수출을 시작한 기름으로 옮겨왔다. 원유는 일당 4만 2천배럴, 천연 가스는 일당 38만㎥를 생산하고 있다. 고지대의 남부 산악 주와 서부 주에서 생산 및 처리 후 700km 떨어진 수도 포토몰즈비ー에 있는 액화·저장 시설까지 보낸다. 2008년 5월 파푸아 뉴기니 정부와 일본 기업 사이에 액화 천연 가스 공장 건설을 위한 기본 합의가 체결되면서 2014년 5월에는 생산된 LNG의 일본 선적이 처음 이뤄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LNG플랜트로 연간 생산량 690만톤 중 약 50%를 도쿄 전력이나 오사카 가스가 구매자이다. 향후 30년간 생산될 예정이다. 철도는 아니라 도시와 지역을 잇는 간선 도로가 부분적으로 정비되어 있어 전국적인 도로망이 없다. 그 대신 항공로가 발달했으며 주요 도시에는 근대적인 공항이 지방 어느 곳이라도 소규모 비행장이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다수 파푸아 뉴기니 국내를 이동하는데 주요 수단이다[8]. 파푸아 뉴기니는 제이차 세계 대전의 전쟁터였다[9]. 당시 라바울의 심슨항은 일본 해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이었다. 지금도 라바울 일대는 침몰선, 그리고 항공기 및 전차의 잔해가 곳 곳에 남아 있다.

그림 188 화산 연구 천문대에서 바라본 라바울: 왼쪽은 파괴된 구시가지, 오른쪽은 신시가지(왼쪽), 뉴브리튼 동부에 있는 1994년에 생성된 타부르 활화산(오른쪽)[10]히말라야산에서 외래종인 설송어(snow trout)는 세픽강과 람강 상류에 의도적으로 도입됐다. 합법적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지만 깃꼴리천, 프라리천, 스트릭랜드천 상류 유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눈 송어가 토종 어류와의 공존에 크게 유리한 종은 아니라고 한다[11].그림 189 히말라야 및 몽골에서만 볼 수 있는 눈 송어(snow trout)가 발견된 파푸아뉴기니의 주요 하천[12]파푸아 뉴기니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one talk”라는 작은 부족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부족은 수십 또는 수백에 속하며 각각 고유의 언어, 관습, 전통을 지니고 있다. 주민은 주로 멜라네시아인, 파푸아인, 미크로네시아인, 폴리네시아인 같은 다양한 인종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유럽인이 노동력 부족을 메우는 데 흑인 노예를 오세아니아에도 이주시킨 것만으로도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오세아니아의 태평양 제도에는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백인이 동양계가 바라보는 생태 교란종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미 지배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있어 일군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흑인을 포함한 동양인은 백인을 싫어하는 것이다. 부디 명심해야 한다. [1]위키 피디아, 파푸아 뉴기니의 국기[2]남우이키, 극락조[3]샘[4] Physical Map of Papua New Guinea, www.mapsofworld.com[5]위키 피디아, 파푸아 뉴기니[6]위키 피디아, 파푸아 뉴기니[7][8]샘, 남 백과 뉴기니[7][8]남 백과 뉴기니[8]남 백과 뉴기니 ers, Fishes of Sahul, pp. 1501~1508, 2019[12]Pita K. Amick, the Himalayan snow trout(Schizothorax richardsonii Gray)is doing the unintended in Papua New Guinean rivers, Fishes of Sahul, pp. 1501~15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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