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러의 환희의 송가는 원래 권주가였다!/ 최승기

  •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진실 (중)
  • 먼저 베토벤 교향곡 9번 음악에 빠져들기 전에 쉴러의 시를 먼저 살펴보자.
  • 과연 그 시가 액면 그대로 인류애만을 노래하는 것일까.
  • 쉴러의 송가 형식의 이 시는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달리 원래 1785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프리메이슨 드레스덴 지부인 ‘세 자매’를 위해 술자리에서 부르기 위한 일종의 권주가로 부르기 위한 곡의 가사로 쓰이기 위해 쓰여 있었다. 이 시에 쉴러의 절친이자 이 지부의 단원이었던 ‘크리스찬 고트프리트 켈너’가 곡을 붙였다.
  • 참고로 프리메이슨은 단순히 세계적인 호화 사교단체다. 프리메이슨이 정치권을 움직인다는 말이나 새로운 종교이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과대망상증 환자가 만들어낸 허언일 뿐이다. 당연히 이들의 멤버가 부유층인데다 상당한 힘을 쓰는 사람들이라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지만 이 역시 최근에는 프리메이슨이 침체되면서 회원 수가 급감하고 현대에 와서 단체의 성격 자체가 바뀌면서 옛말이 되고 있다. 지금은 라이온스 클럽이 더 활발하다.
  • 어쨌든 쉴러의 이른바 환희의 송가는 프리메이슨 지부 단원들이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 연회나 만찬을 위한 자리에서 불렸다. (양카이엘스, 희망명언)
  • 그리고 쉴러는 원래 ‘자유의 송가'(Ode ‘Andie Freiheit)’를 썼으나 ‘환희의 송가'(Ode ‘Andie Freude’)로 변경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의 추측으로 남아 있다. 알렉산더 세이어는 베토벤 전기에서 “베토벤의 마음에 처음으로 열광적인 찬사를 불러일으킨 시는 ‘자유의 송가'(‘환희의 송가’가 아니라)의 초기 형태였다는 데 가깝다고 추측한다”고 썼다.
  • 사실 이 시는 1805년 세상을 떠난 쉴러 본인도 좋아하지 않았다. 실제로 1793년부터 1808년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쉴러 작품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베토벤조차 그 기간에는 쉴러의 작품을 가지고 어떠한 시도도 할 수 없었다.
  • 쉴러는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지만 독일 문학사에서 그 평가는 양극적이다. 한편 나폴레옹 전쟁에 출정하는 독일 병사들은 정신적 무장을 위해 그의 <빌헬름 텔>을 품에 안긴가 하면 <돈 카를로스>는 계급사회에서 정치활동의 길이 막힌 시민계층에 욕구불만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치적 비전을 제시해 독일의 국민적 시인으로 추앙받기도 했지만 반면 독일 낭만파 시인이나 청년 독일파 시인들은 쉴러의 격정 넘치는 희곡 작품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시인으로서의 역량까지 의심하는 등 극단적인 평가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 20세기 들어서도 토마스 만이나 아도르노 같은 작가와 학자들이 쉴러문학 수용에 있어 양극적인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 토마스 만에게는 쉴러가 독일 국민의 가슴 속에 민족정신과 인도적 도덕성을 고취시키는 정신적 의사인 반면 아도르노는 쉴러야말로 계몽의 변증법에 사로잡힌 정신적 폭행자이자 세상을 감옥으로 만들고 있는 파시스트라고 주장한다.
  • 어쨌든 쉴러는 잘 알려져 있지만 가장 이율배반적인 작가임은 분명하다.
  • 환희의 송가로 돌아가자
  • 환희의 송가는 독일의 프리메이슨 단원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졌고 1800년에는 이 시에 음악을 붙인 14곡의 노래를 모은 모음이 출간됐다.
  • 1803년 쉴러는 혁명 이전에 쓴 시의 몇 부분을 부드럽게 바꾸었다.
  • “Wasder Mode Shwertgeteilt”(이 세상의 칼이 찢어진 것)을 “Wasdie Modestrengeteilt”(이 세상이 엄혹하게 찢어진 것)으로, 그리고 “Betlerwerden Fürstenbrüder”(거지 군주의 형제가 되다)를 “Alle Menshenwerde Brüder”(만인은 형제가 된다)로 정치적으로 유연하게 고쳤다.
  • 이 부분을 제외하고 베토벤은 언어적으로 (이념적으로가 아닌) 강한 울림이 있는 1785년 원본 텍스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몇몇 해설도 포털 사이트에 나돌고 있는 베토벤 9번 교반곡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 쉴러 시의 개정판이라는 설명은 틀렸다.
  • 베토벤은 원래 시의 형식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다.
  • 3행시 중 처음 3개의 가장자리만 순서대로 살리고 그다음에 4번째, 1번째, 3번째 3행시가 이어지는데 4번째와 1번째 사이에 1번째 3행시가 다시 등장한다.
  • 마지막 부분에서는 앞마디가 반복되고 어떤 부분은 여러 번 반복되면서 크레셴도 효과를 내고 있다.
  • 베토벤은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바꿨다.
  • 원본 시에서 술자리 노래를 연상케 하는 모든 요소와 순수한 정치적 색채를 띤 인연을 삭제했다.
  • 이렇게 술자리 노래였던 쉴러의 환희송가는 ‘Brueder!über’m Sternenzelt Muee inliber Vaterwornen.'(형제여! 별빛 장막 너머 사랑의 아버지가 분명히 살아계신다는 베토벤식 환희의 송가로 압축돼 다시 태어난 것이다.
  • 이 곡을 자꾸 이념적으로 몰아붙이려는 어떤 선동(?)적 해석만 제외하고 베토벤을 순수하게 음악적으로만 듣는다면 이런 작풍은 그 유명한 디아벨리 변주곡(1823)에서도 교향곡 9번 합창 부분과 같은 예술적 변신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그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마지막 부분 합창환상곡과 3번과 5번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을 꼼꼼히 들으신 분들은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 베토벤은 어떤 특징적인 주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서히 끊어져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크레센드로 음악적 환희를 표현하려 했지만 아무런 이념적 환희를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로시니 크레센드처럼.
  • 송가의 주제는 피날레 폭발을 위해 초반에는 엄격하게 절제돼 있다.
  • 대부분의 소리의 길이는 4분음표로 같고, 저음 하나를 제외하고는 5도의 좁은 틀 안에서 움직이며 서서히 뜨거워진다. 이는 절정의 순간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 낮은 음역에서 최고음까지 상승시켜 템포를 증가시키고 중간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느린 부분을 의도적으로 삽입하여 소리를 키우고 유행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 위해 터키 행진곡을 활용하고 마지막 부분에는 최면 상태에 빠질 정도로 단어와 모티브를 주문처럼 반복한다.
  • 이때 청중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든다.
  • 그렇다면 베토벤은 이 9번 교향곡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이 부분은 베토벤의 스케치를 보면 분명하게 그의 음악적 의도를 읽을 수 있다.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 우선 9번 교향곡을 들으러 직접 콘서트홀을 찾은 청중들은 음악을 듣기 전 오케스트라 외에 독창자와 합창단만 봐도 긴장하기 시작한다. 곧 뭔가 새로운 것이 쏟아질 것 같은 기대감이다.
  • 그런데 4악장 이전의 3악장은 별로 부담이 없다.
  • 베토벤은 제1악장 스케치에서 이런 말을 한다.”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다른 거 쓸만한 거 갖고 싶어”
  • 제2악장에대해서는아,아니,이건아니야,조금더나가야해,더밝아야해.
  • 그러면서 3악장은 이건 너무 느긋하다. 좀 더 활발한 걸 찾아야 하는데.
  • 그리고는 마지막 4악장에 와서야 송가 주제인 4절을 부른 뒤 아, 이거다, 드디어 더 멋진 걸 찾았다, 이게 환희다.”
  • 4악장에서 싱코페이션 리듬으로 분주한 가운데 관악기가 포르티시모로 내뿜는 음향을 바그너는 ‘놀라운 팡파르’라고 불렀다.
  •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마치 성악가가 아리아를 부르기 전에 읊듯이 부르는 레치타티보(recitativo)처럼 곳곳에 수시로 등장한다. 실제로 이 부분의 템포는 거의 애드리브에 가깝다.
  • 결국 1악장의 숭고한 위엄이나 2악장의 스케르초를 이용한 디오니소스적 분방함, 그리고 3악장 아다지오에서 느껴지는 우울한 분위기는 4악장을 위한 전조증상에 불과했다.
  • 그런데 이 환희의 주제는 클라이맥스에 가지 못하고 베토벤이 직접 작성한 텍스트를 노래하는 베이스 독창자에 의해 해체된다.
  • “O Freunde, nichtdiese Töne! Sondernlasstunsangenehmereanstimmen, undfreudenvollere”(아, 친구여! 이런 곡조가 아닙니다! 더욱 즐겁고 환희에 찬 곡조를 불러봅시다.)
  • 사실 쉴러의 시가 아니라 베토벤이 창작한 이 부분이 환희의 송가 전체의 포커스다.
  • 베토벤은 낭독도 어렵고 노래하기도 어려운 이 부분을 통해 과거 음악과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물론 실천적이지는 않지만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끄는 이념을 밝혔다.
  • 가사처럼 모든 형제를 위한 이념은 바로 이상적인 것이며, 실제로 이 곡은 이 곡을 위한 수입을 위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게 헌정했다.
  • 이 프로이센 왕은 이미 베토벤으로부터 장엄미사 악보를 구입했다.
  • 베토벤은 치밀하게 빈에 있는 프로이센 대사를 통해 미리 기억하고 1826년 9월 27일 왕을 위해 교향곡 9번 악보를 베를린으로 보냈다.
  • 그러나 프로이센 국왕이 교향곡 9번에 대해 하사한 것은 붉은 보석이 박힌 수수한 반지였지만 그 가치는 불과 300그루덴에 불과해 베토벤은 매우 실망하고 그마저도 팔고 만다.
  • 베토벤 9번 교향곡이 지닌 특별함은 음악 언어가 아니라 전체 컨셉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교향곡 9번의 마지막 하모니가 울려 퍼지면 환희(그것이 음악적이든 이념적이든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팩트는 더 이상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에 잠긴 청중은 이미 넋을 잃은 사람처럼 정상에서 저만큼 떨어져 있다.
  • 이런 현상은 1824년 5월 7일 초연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 그것은 쉴러의 시도 개작된 베토벤의 글도 아닌 바로 탁월한 베토벤의 치밀한 작곡 방법(마치 1.2.3악장을 4악장을 위해 절제한 것처럼) 덕분이다.
  • 참고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과연 인류애를 위한 상징인가?’에 대한 내용은 새로 출간된 책 ‘제1막 2장 클래식’ 에필로그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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