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스트롯에서 ‘원망스러운 대동강이여~’라는 한 문구로 침체됐던 트로트의 부흥을 이끌어낸 차세대 트로트 여왕 송가인. 그의 본명은 조은심이다. 1986년 12월 26일생으로 36살이다. 고향은 전남 진도군 지산면의 앵무새는 작은 편이지만 153으로 단신이다. 몸무게는 44kg인 것으로 알려졌다. 혈액형은 A형이다. 송가인의 아버지는 조용환, 어머니는 송승단 씨이고 어머니는 무당이 직업이다. 송승단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기굿 전수교육조교(인간문화재 전 단계)다.
위에 형 조규찬 조성재(국악을 전공하고 아쟁 연주자이다)가 있고, 또 다른 가족으로는 조규찬의 딸 조은서가 있다.
송가인의 학력은 광주예술고등학교 국악과를 거쳐 중앙대 음악극학과를 졸업했다.
가수 송창식
송가인이 차세대 트로트 여왕이 된 이유는 그가 곡이 가진 감성과 이면을 노래로 풀어내는 능력이 바로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가수 송창식은 앞으로 이미자의 뒤를 이어 트로트계를 이끌 가수가 송가인이 될 것 같다. 앞으로 50년간 트로트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극찬했다. 그런 송창식의 극찬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미 장르가 ‘송가인’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현재의 인기 고공행진이다.
송가인의 아버지와 어머니
송가인은 저음부터 고음까지 탁월하게 소화하며 파워풀한 소리도 매우 여유롭게 낸다. 송가인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판소리를 시작해 2008년 전국 판소리 대회 대상을 수상했고, 2010년, 2011년 판소리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2회 연속 수상했다. 형 조성재도 국악을 전공하고 아쟁을 연주하고 있다. 송가인은 전국노래자랑 진도군 편에 출연해 당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일주일 뒤 연말 결선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무대를 본 방송 관계자가 연락을 취했고, 이후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송가인 역시 2012년 10월 노래를 발표해 무명 시절을 겪었다.
그러던 중 2019년 ‘내일은 미스트롯’에 출연하게 되며 초반부터 압도적 우승 후보로 예상돼 인기를 끌어갔다. 마침내 우승하여 미스트롯진을 획득했다. 당시 송가인의 출연으로 인해 정통 트로트의 파괴력을 봤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본래 정통 트로트 자체가 이미 인기가 시들하던 중, 그러나 송가인의 정통 트로트 창법에 사람들은 매료되어 판소리를 냈던 송가인만의 소리와 노래에 다시 정통 트로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송가인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의 어머니 송승단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송가인 어머니 송승단. 1958년생 송순당은 진도군 지산면 길은리에서 태어났다. 큰딸로, 위로 오빠 밑에 두 여동생과 한 남동생을 두었다. 송승단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사당패와 같은 유랑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여의고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이후 진도의 도구로 뛰어들어 세례굿을 하게 된다. 큰딸 송승단도 자연스럽게 굿판에 들어갔다.
큰딸이었던 송승단은 엄마처럼 동생들을 위해 가정부 생활을 했다. 너무 가난해서 동생들을 업고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국민학교 3학년 도중에 학교는 그만두었다. 15세부터 하녀 생활을 시작한 송가인의 어머니. 그러나 가정부 도중 어머니가 바다에 빠져 돌아가셨다. 개울에 나가 골뱅이를 캐다가 밀물을 피하지 못하고 운명되었다. 송승단은 어린 시절 가정부로 일한 돈으로 장례를 치렀다. 송승단의 아버지는 외눈박이 봉사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술로 살았다고 한다.
송가인 씨 조성재.
송승단은 고향 진도로 내려와 집안일을 맡았는데, 28세의 독신 조용환씨와 눈이 맞아 결혼한다. 시댁에 들어가 살 무렵 형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 식물인간 상태로 버티다 운명했다고 한다. 송승단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다. 하지만 첫 아이가 뇌막염에 걸려 숨졌다. 엄마와 오빠에 이은 아기의 죽음…. 첫째 아이의 죽음으로 시댁과의 갈등이 커지자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신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신열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남편은 점쟁이가 싫다며 신내리기를 반대했다. 송승단씨는 이에 결국 신내림을 선택했고 보살들의 도움으로 굿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송승단은 자신이 겪은 죽음의 행렬이 연속된 것, 그리고 업고 키운 동생까지 교통사고로 인생을 바꾸자 그 고통을 견디기에는 너무나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국방에 뛰어든 송승단은 이완순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세습무인 세례굿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한다. 이후 이완순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완순의 당골빵을 인수하게 된 송승단. 현재 세례굿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송가인은 한 방송에서 어머니의 직업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무당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이에 송가인의 어머니는 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