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011

  1. 도착지는 나트랑 캄라인 국제공항. 처음으로 엄마와 단둘이 떠나는 해외여행이다. 원래 계획은 아빠도 같이 가는 거였는데 사정이 생겨서 엄마만 같이 가기로 결정. 전날 준비한 짐을 꾸려 새벽 일찍 택시를 타고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성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찍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서둘러 갔지만 연휴가 시작돼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수속을 한 후, 식당으로 향했다. 엄마는 곰탕을, 나는 라면정식을 주문했다. 둘 다 우리가 생각했던 맛은 아니었지만 뭐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나는 여행에서 공항으로 출발하여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가 항상 가장 설렜던 순간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일단 출발할 때 기분이 좋으면 끝까지 감정이 이어지는 것 같아서.
  2.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책을 꺼내 읽었다. 옆에 앉은 분도 동양철학 관련 책을 읽고 계셨다. 하필이면 내 자리는 독서등이 켜지지 않아 조금 불편했지만 그냥 읽기로 했다. 전혀 암흑이 아니어서 가방에 넣고 간 책은 타라 웨스트오버가 쓴 <배움의 발견:Educated>와 웬디 우드가 쓴 <해빗:HABIT>였는데 색도 노오라는 파스텔톤이었고 여행에 어울리는 제목은 배움의 발견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먼저 읽기로 했다.
  3. 3. 이 책은 주인공 타라 웨스트오버는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인 아버지 밑에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오로지 홈스쿨링(?)만으로 브리검영대와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에 다녔다. 마냥 다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브리검영대학교 최우수학부상을 수상했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는 장학금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지난해 방문연구원을 지냈으며,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선정되었다.
  4. 4. 그녀는 아이다호주의 대자연에서 생활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부모님의 가르침(?)과 형제자매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한 것이다. 그곳에서의 배움을 그녀는 산의 리듬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표현하지만, 생사를 가를 뻔한 사건과 폭력적인 오빠와 강압적인 아버지, 그리고 의료 서비스를 거부하는 가족 문화 속에서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모든 것들.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수 없다는 생각에 자청해서 나온 대학생활. 돈을 벌어 새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도전한 소일거리나 합창단 활동 등은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쳐 책 후반부에 등장하지만 어려서부터 계속되는 학대에 가까운 몇 가지 일들이 그녀가 심리학 관련 논문을 쓰는 토대가 되고 결국 아버지와 오빠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녀는 이런 고투의 과정 속에서 발견한 자아에 변신과 탈바꿈, 허위, 배신이 섞여 있다고 하는데 이를 교육이라고 부른다고 스스로 정의한다.
  5. 5. 오래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깊이 있게 들어갔는지도 – 인생에 있어서 – 중요한 것 같아 그리고 그 밑에 얼마나 더 들어가 고민하고 생각했는지도. 경험에서 배우는 무엇인가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 책의 주인공 웨스트오버는 살아온 가정환경 속에서 그것을 오랫동안 실천(?)해 왔다. 500쪽에 가까운 이 책의 두께가-어쩌면 짧을 수도 있는-그녀의 30여년 인생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해방되는 과정과 독특한 가정문화 속에서 다양한 자아를 갖고 있는 어머니, 오빠, 언니들과의 갈등 속에서 그는 많은 무언가를 배워 온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교육’의 반복이고,
  6. 6.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 같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느낀 점이 많았다. 우선 오해는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둘 필요도 있다는 사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몸매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옷을 입으면 창녀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환경에서 자란 웨스트오버와 전혀 그렇지 않은 그녀의 대학 사람들과의 사소한 갈등 속에서 그녀는 이를 깨닫는다. 산속에서 자라면서 죽을 뻔한 사고를 이겨내고 깨달은 것처럼. 또 하나는 학습이란 결국 스스로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 대도시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았으며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돌 속에 감춰진 보석 같다는 교수들의 칭찬은 그의 삶 자체를 배움의 성과로 인정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빗나간 얘기지만 한국 학군 운운하며 선행학습 명문고 학원과 과외는 웨스트오버 사례와 비교할 만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받아온 가정교육을 하자는 건 아니야. 그녀가 받은 가정교육은 어쩌면 가정폭력과 학대로 볼 여지도 많았으니까…)
  7.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장을 접을 수 있었다. 심각한 주문난 속에 받은 맥주 한 캔과 젤리를 집어 들며 나머지 페이지를 넘겼지만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그의 가족과의 갈등이 인생의 조각처럼 남아 있는 듯했다. 이 책의 제목이 배움의 발견인 것 같다. 아직 배움의 마지막에 가보지 못한, 그 과정 속에 있음을 알리는 뉘앙스의 독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그의 배움의 과정이 끝이 아닐 것이다.혹시 나올지도 모르는 그 뒤 시간의 기록도 기다려진다.

배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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