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은 아쉽게도 박스오피스에서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사실 드라큘라라는 캐릭터만큼 유명한 캐릭터도 찾기 힘들거야. 마블이나 DC의 히어로만큼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개들도 알 만한 인지도를 가진 캐릭터인데, 그래서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드라큘라 백작은 정말 많이 나왔고 뱀파이어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셀 수 없다. 특히 뱀파이어를 다룬 미드는 너무 많아서 지긋지긋할 정도인데 그만큼 사골국에 담근 정도의 캐릭터라는 뜻이며, 이는 곧 참신한 내용이나 기원이 아니면 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질리고 널리 알려진 캐릭터를 기원으로 블록버스터로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가 정말 멋지게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일말의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그렇다고 영화 자체는 지루하지도 않고 볼만한데 이걸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느냐고 묻자 주저하며 답을 모호하게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당당하게 3부작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낸다면 무조건 한 편을 걸작으로 만들어야 했고, 그렇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돈을 벌어야 했지만 이 작품은 처절하게 묻혀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영화 관련 뉴스를 나름대로 꿰뚫어보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개봉한 줄도 몰랐을 정도로 잊고 있다가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가 급하게 감상하게 된 작품이다.
개봉일을 보면 북미는 알 수 없지만 국내는 2014년 10월 초순이다. 보통 블록버스터 개봉일은 여름과 겨울인데 10월 초면 나름 애매한 예술영화가 개봉되는 시기 아니었나. 제작사인 유니버설에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영화사에서는 개봉일을 정할 때 대략적으로 작품이 흥행할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이 영화가 잘 안 된다는 데 다들 동의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겉만 봐도 질린 소재의 드라큘라여서 감독도 유명한 사람이 아닌데다 배우도 루크 에반스와 도미니크 쿠퍼로 여간 A급이라 할 수 없다. 물론 루크 에반스는 무서울 정도로 드라큘라와 잘 어울리고 연기도 좋아 집중해서 보게 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아주 유명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아니라면 영화가 정말 [배트맨 비긴스] 수준으로 잘 나왔어야 했는데, 이 작품은 그냥 보기만 한 액션 블록버스터 수준이고 보면 사실 딱히 뇌리에 남는 게 없는 영화다.
쓰다 보면 영화가 계속 별로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 같은데 그건 절대 아니다.
이 영화는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가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장면을 계속 보여준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래픽은 상당히 좋지만 드라큘라 백작이 밝은 곳을 싫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액션 장면이 어두운 곳에서 이뤄진다는 게 조금 단점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그래픽 작업을 섬세하게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제작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꼼수가 보이는데 액션 장면은 7년이나 된 작품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게다가 연출과 연기도 아주 훌륭하다.
특히 주인공 역을 맡은 루크 에반스는 자신의 역할을 120% 이상 해줄 정도로 드라큘라 백작과 딱 맞아 다른 배우들의 존재감도 좋고 액션 장면도 나쁘지 않다. 아쉬운 건 도미니크 쿠퍼가 연기하는 술탄의 아들인 나름 악역의 존재감이 별로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는 연기력이나 배우의 문제라기보다는 분량의 문제로 보인다. 영화가 워낙 루크 에반스에게 기대다 보니 다른 배우나 캐릭터가 돋보일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보면서 살짝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가족의 정과 로맨스가 담겨있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제작사가 다름 아닌 유니버설이다.게다가 제작 노트를 읽어보면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영화적 색채를 가미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쩐지 제가 잘 아는 드라큘라 스토리가 아니라서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래서인지 내용적으로는 더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후속작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영화가 너무 폭망해서 당연히 후속작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볼만하고 액션 장면이 좋기 때문에 큰 화면으로 보면 훨씬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가족끼리 봐도 되고 별로 잔혹한 장면도 없어서 아이랑 봐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