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가수 배호 선생의 사주 추론 : 별세 50주년 기념

오늘 KTV를 잠시 보니 고 배호 선생님이 노래를 부르시더군요.

정말 감미롭고 애절하게 불리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배호 선생님의 인생 행적을 보고 사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시간이 2~3시간 지났네요. ㅠ.ㅠ

일단 배호 선생님은 대대로 개신교 집안이고 현재 생일에 맞춰 음악회가 열린 기록이 있기 때문에 생일은 크게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은 건 생시였는데 정말 고뇌하고 추정했어요.

여기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어제 대구에 오래된 블로그 팬분의 사주를 간명했습니다. 정말 마음의 사연을 가지고 계시네요. 아무튼 제가 그분하고 통화하면서 느낀 거랑 사주가 너무 안 맞아요. 초새로운신금 일주일인데 제가 전화로 느낀 그분에 대한 느낌은 그래도 너무 착하고 인자하더라고요. 그래서 확인해보니 제가 생일을 잘못 입력했네요.

그래서 아~ 북극성이 통화만으로 웬만한 사주를 유추할 정도는 되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좀 좋더라고요.

두 번째 사연은 얼마 전 한 어머니와 장남의 사주를 간명했습니다. 그런데 산모한테 제가 식상 기운이 왕성하고 항진해서 기운이 빠지고 몸이 안 좋아지니까 각별히 조심하라고 했어요. 오늘 배호 선생님의 사주를 보니 딱 그런 것 같네요… 역시 식상의 기운이 왕성하다는 것은 두고두고 조심해야 할 문제인 것 같네요.

그럼 배호 선생의 사주팔자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 배호선생과 사주팔자 (태어나는 북극성 추정)
  2. 1) 배호 선생님 모습 노안이네요.

2) 배호 선생의 사주명조: 24세의 정미대운 중 미대운에 사망하여 별도 표기하였습니다.

2) 배호선생님의 일생과 여담

  1. 배호선생님의 인생

중화민국 산둥성에 거주하다가 3세 때 대한민국 광복으로 독립운동가 출신의 부모를 따라 귀국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1955년 과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사망하였고, 이후 부산에 있는 이모네 집에 내려가 살다가 집안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자 부산삼성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삼촌 김광빈의 집으로 상경하였다. 참고로 ‘배호’라는 예명도 이때 김광빈이 지어줬다.

1958년부터 1964년까지 삼촌 김광수와 김광빈의 악단, 미군부대, 카바레, MBC악단, 김인배악단 등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6~7인조 캄보디아 밴드인 <배호와 그 악단>을 결성해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 김광빈으로부터 받은 ‘굿바이’, ‘두메산골’ 등의 곡을 불어넣지만 별다른 히트를 치지 못하고 여전히 가수를 부업으로 하는 드러머 생활을 이어갔다.

그가 부른 초기 곡은 트로트가 아닌 재즈와 라틴 음악 등이 섞인 스탠다드 팝 계열 작품이었다.

그러나 1967년 배상태가 작곡한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가 대히트를 치면서 그는 곧 1960년대 최고의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는 1966년부터 앓아온 신장염으로 투병생활을 했고 건강이 회복될 틈도 없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그러다 1971년 라디오 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비를 맞지만 저체온증으로 감기에 걸렸고 투병생활로 면역력이 약해 컨디션이 악화되면서 끝나는 졸도, 여기에 복막염까지 합병증으로 겹쳐 1971년 11월 7일 어머니와 여동생, 그의 최고의 파트너인 작곡가 배상태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29세라는 짧은 일기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대구 공연에서 만난 여성 팬들과 약혼까지 했지만 그를 계속 간호했다고 한다. 결국 배호가 심한 말을 해서라도 임종 직전에 집에 보냈다고. 당대의 사회상을 고려하면 팬들의 미래(=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것)를 위해 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최희준, 현인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참석해 상복을 입은 여성들이 길게 줄을 섰고, 장례식에서는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 고인을 대표하는 히트곡과 함께 유족과 동료, 스승들의 슬픈 흐느낌만 울려 퍼졌다.

경기 양주시 신세계공원묘지에 안장됐고 여기에 어머니와 동생 묘소까지 함께 있다.

1981년 MBC 특집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에 선정됐고, 2005년에는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 가수 10인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배호와 함께 일했던 음악인이 훗날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를 발굴하려 했으나 음악 실력 및 목소리 활용 능력 측면에서 차이가 있어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신장염에 +복막염까지 앓고 있는 가운데서도 박자, 음성에 흐트러짐 없이 정확한 음정을 선보인 고인의 그에 비해 손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호의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프랑스에서 재즈바를 운영하는 프랑스인이 소개됐는데, 그가 베호의 곡을 라이브로 연주하면서 베호를 알게 된 외국인이 늘었다고 한다.

또한 2003년 10월 20일 대한민국 가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고, 2003년부터 배호가요 내가 열리고 있다. 2005년 5월 20일에는 소담출판사에서 배호평전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삼각지 한 갈래가 배호길이라 명명되었다.

2) 여담

도는 삼각지의 배경인 삼각지 로터리(현재 삼각지역 교차로)에는 입체 교차로가 있었으나 1967년 12월 26일 개통되었으나 수도권 전철 4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교차하는 공사에 휘말리면서 방해물로 전락하여 결국 1994년 7월 9일 철거되었다.

현재는 삼각 지역 부근에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배호길, 배호 동상, 배호 패널 등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림이나 패널, 동상이나 퀄리티가 별로 좋지 않다. 그림은 전문가의 솜씨 같지 않고 동상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빛이 반짝이는 것이 너무 싸다. 패널은 사진과 비슷하다고 그린 것 같은데 오히려 본인보다 못생겼고, 게다가 동상 근처 벽에 돌아가는 삼각지를 소개하는 짧은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이 안내판은 맞춤법이 틀렸다(…

그의 창법은 일반적인 트로트 가수들과 달리 스탠다드 팝 남성 가수들이 보여준 묵직한 저음을 그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강조해 절정부에서 애틋한 고음을 구사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고음이 올라가면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도는 삼각지에서 슬프게 찾아온~ 부분.

하춘화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배호가 죽기 사흘 전 하춘화가 그를 찾아갔을 때 배호는 심각한 고통으로 말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너 왔구나”라고 말한 뒤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고. 하춘화는 배호의 유족들과 생전에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또한 지금은 영상이 남아있지 않지만 배호는 살아있는 동안 하춘화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고 한다.

배호의 유족들도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배호가 가수 활동 등을 통해 구입한 주택과 여러 재산이 있었지만 정신질환자였던 여동생과 심장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어머니가 쓰면서 수입이 없지만 지출이 생기는 바람에 더욱 빈곤 속에서 시달려야 했다.

여동생은 매우 짧은 기간 가정교사로 활동하다가 형 사후 조울증으로 시작해 오랫동안 여러 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2003년 정신질환으로 인한 당뇨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끝까지 돌보던 목사에게 웃으며 “목사님 사랑해, 정말 고마워.”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동생도 독신이고 따라서 남은 가족은 없다. 그나마 배호의 5촌 조카 혈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도 생전의 배호와 달리 가요계와는 무관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전국에 그의 노래비가 7개 세워져 있다. 그 중 정식으로 4개의 비석이 있는데 삼각지로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와 그의 동상이 있으며, 배호의 묘역에는 ‘두매산골’ 노래비가 있다. 또한 경주시와 강릉시에 각각 ‘마지막잎’과 ‘파도’ 노래비가 있다.

배호와 함께한 악단 멤버들은 거의 생존해 있다. 그들과 팬들에 의해 삼각 지역에 세워진 동상 앞에서 정기적으로 배호가 이루어집니다.축제와 모창 대회를 개최하다.

참고로 우승자 중에 조명섭과 같이 컨셉을 잡고 활동하는 가수가 있는데 활동명은 배오(본명 심우경)이다. 영상을 보면 정말 선글라스를 낀 풍채이고 창법 등이 배호와 비슷하다.

자료 출처 : 나무위키

3) 북극성 배호 선생의 사주설명

개인적으로 식상이 과도한 사주팔자는 해석의 난이도가 어려운 편입니다. 관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상제살도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식상과다 난이도가 어려운 것은 비겁함과 관성의 역할 때문입니다.

사주에 절대적이고 단편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밥상과다냐에 따라서 그 모양이 굉장히 달라요. 이에 관해 설명하자면 북극성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에 위의 경우에만 한정해 보겠습니다.

우선 절대적으로 필요한 용신은 갑목입니다. 그러면 기신은 돈이 됩니다. 문제는 희신과 구신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먼저 희신을 결정하기 어려운 것은 이 사주는 매우 건조한 사주가 됩니다. 그리고 임수는 갑목을 길러줍니다. 모양 자체는 아주 좋습니다. 수생목, 목생화로 이어지니까요. 또 일부 학파에서는 여기서 수(관)가 식상의 기운을 설명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대요.

다른 곳에서는 관성이 들어오면 본체인 정화가 극신약이 되기 때문에 비겁한 화를 희신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북극성 학교는 어떻게 볼 것인가.

희신의 개념을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희신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래서 식상과다는 불행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결론은 무엇인가? 일단 희신은 화로에서 보는 게 맞아요. 하지만 다른 사주의 희신에 비해 장점이 떨어지고 단점은 더 많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용신목, 백신화라면 기신은 금, 구신은 수가 됩니다. 남은 건 토할 건데요.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한신은 보통 한가한 신이라고 해서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식상이 과잉인 경우와 많은 경우를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상당히 식상이 과도하면 거의 기신급에 준한 한신이 되어 버립니다. 앞으로는 밥상과 사주팔자가 어렵고 사주팔자를 종합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서를 보고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많은 간명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극성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사주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경우 상대방에게 과거를 질문합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간명을 위해서입니다. 정확한 과거의 적중을 통해 올바른 현재 분석과 미래 예측이 가능한 것이 명리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아무튼 배호 선생님은 식상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임수는 갑목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임수가 뿌리 없는 무정한 상태라는 겁니다. 물의 근원이 약해서 물은 마르고 물이 마르니 나무는 견디기 어렵고 나무가 약해지면 본체 정화는 죽게 됩니다. 이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또한 북극성학파에서 매우 중시하는 이론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축미충이 눈에 거슬립니다. 하지만 이 사주에서 크게 일할 여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혼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결혼하신다면 영원한 사랑을 하기 어려운 사주입니다. 아울러 어머니의 역량이 큰데, 그래서 고인의 어머니가 동생, 즉 배호 선생님의 외삼촌 덕분에 가수 데뷔를 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배호 선생님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도쿄대학교 수의학과를 나왔고, 어머니는 미션스쿨을 나왔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1955년 배호 선생 14세에 과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돌아가시고 배호 선생이 학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합니다. 만약 가세기

2) 배호선생님의 일생과 여담

  1. 배호선생님의 인생

중화민국 산둥성에 거주하다가 3세 때 대한민국 광복으로 독립운동가 출신의 부모를 따라 귀국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1955년 과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사망하였고, 이후 부산에 있는 이모네 집에 내려가 살다가 집안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자 부산삼성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삼촌 김광빈의 집으로 상경하였다. 참고로 ‘배호’라는 예명도 이때 김광빈이 지어줬다.

1958년부터 1964년까지 삼촌 김광수와 김광빈의 악단, 미군부대, 카바레, MBC악단, 김인배악단 등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6~7인조 캄보디아 밴드인 <배호와 그 악단>을 결성해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 김광빈으로부터 받은 ‘굿바이’, ‘두메산골’ 등의 곡을 불어넣지만 별다른 히트를 치지 못하고 여전히 가수를 부업으로 하는 드러머 생활을 이어갔다.

그가 부른 초기 곡은 트로트가 아닌 재즈와 라틴 음악 등이 섞인 스탠다드 팝 계열 작품이었다.

그러나 1967년 배상태가 작곡한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가 대히트를 치면서 그는 곧 1960년대 최고의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는 1966년부터 앓아온 신장염으로 투병생활을 했고 건강이 회복될 틈도 없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그러다 1971년 라디오 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비를 맞지만 저체온증으로 감기에 걸렸고 투병생활로 면역력이 약해 컨디션이 악화되면서 끝나는 졸도, 여기에 복막염까지 합병증으로 겹쳐 1971년 11월 7일 어머니와 여동생, 그의 최고의 파트너인 작곡가 배상태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29세라는 짧은 일기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대구 공연에서 만난 여성 팬들과 약혼까지 했지만 그를 계속 간호했다고 한다. 결국 배호가 심한 말을 해서라도 임종 직전에 집에 보냈다고. 당대의 사회상을 고려하면 팬들의 미래(=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것)를 위해 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최희준, 현인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참석해 상복을 입은 여성들이 길게 줄을 섰고, 장례식에서는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 고인을 대표하는 히트곡과 함께 유족과 동료, 스승들의 슬픈 흐느낌만 울려 퍼졌다.

경기 양주시 신세계공원묘지에 안장됐고 여기에 어머니와 동생 묘소까지 함께 있다.

1981년 MBC 특집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에 선정됐고, 2005년에는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 가수 10인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배호와 함께 일했던 음악인이 훗날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를 발굴하려 했으나 음악 실력 및 목소리 활용 능력 측면에서 차이가 있어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신장염에 +복막염까지 앓고 있는 가운데서도 박자, 음성에 흐트러짐 없이 정확한 음정을 선보인 고인의 그에 비해 손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호의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프랑스에서 재즈바를 운영하는 프랑스인이 소개됐는데, 그가 베호의 곡을 라이브로 연주하면서 베호를 알게 된 외국인이 늘었다고 한다.

또한 2003년 10월 20일 대한민국 가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고, 2003년부터 배호가요 내가 열리고 있다. 2005년 5월 20일에는 소담출판사에서 배호평전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삼각지 한 갈래가 배호길이라 명명되었다.

2) 여담

도는 삼각지의 배경인 삼각지 로터리(현재 삼각지역 교차로)에는 입체 교차로가 있었으나 1967년 12월 26일 개통되었으나 수도권 전철 4호선과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교차하는 공사에 휘말리면서 방해물로 전락하여 결국 1994년 7월 9일 철거되었다.

현재는 삼각 지역 부근에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배호길, 배호 동상, 배호 패널 등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림이나 패널, 동상이나 퀄리티가 별로 좋지 않다. 그림은 전문가의 솜씨 같지 않고 동상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빛이 반짝이는 것이 너무 싸다. 패널은 사진과 비슷하다고 그린 것 같은데 오히려 본인보다 못생겼고, 게다가 동상 근처 벽에 돌아가는 삼각지를 소개하는 짧은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이 안내판은 맞춤법이 틀렸다(…

그의 창법은 일반적인 트로트 가수들과 달리 스탠다드 팝 남성 가수들이 보여준 묵직한 저음을 그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강조해 절정부에서 애틋한 고음을 구사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고음이 올라가면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도는 삼각지에서 슬프게 찾아온~ 부분.

하춘화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배호가 죽기 사흘 전 하춘화가 그를 찾아갔을 때 배호는 심각한 고통으로 말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너 왔구나”라고 말한 뒤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고. 하춘화는 배호의 유족들과 생전에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또한 지금은 영상이 남아있지 않지만 배호는 살아있는 동안 하춘화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고 한다.

배호의 유족들도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배호가 가수 활동 등을 통해 구입한 주택과 여러 재산이 있었지만 정신질환자였던 여동생과 심장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어머니가 쓰면서 수입이 없지만 지출이 생기는 바람에 더욱 빈곤 속에서 시달려야 했다.

여동생은 매우 짧은 기간 가정교사로 활동하다가 형 사후 조울증으로 시작해 오랫동안 여러 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2003년 정신질환으로 인한 당뇨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끝까지 돌보던 목사에게 웃으며 “목사님 사랑해, 정말 고마워.”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동생도 독신이고 따라서 남은 가족은 없다. 그나마 배호의 5촌 조카 혈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도 생전의 배호와 달리 가요계와는 무관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전국에 그의 노래비가 7개 세워져 있다. 그 중 정식으로 4개의 비석이 있는데 삼각지로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와 그의 동상이 있으며, 배호의 묘역에는 ‘두매산골’ 노래비가 있다. 또한 경주시와 강릉시에 각각 ‘마지막잎’과 ‘파도’ 노래비가 있다.

배호와 함께한 악단 멤버들은 거의 생존해 있다. 그들과 팬들에 의해 삼각 지역에 세워진 동상 앞에서 정기적으로 배호가 이루어집니다.축제와 모창 대회를 개최하다.

참고로 우승자 중에 조명섭과 같이 컨셉을 잡고 활동하는 가수가 있는데 활동명은 배오(본명 심우경)이다. 영상을 보면 정말 선글라스를 낀 풍채이고 창법 등이 배호와 비슷하다.

자료 출처 : 나무위키

3) 북극성 배호 선생의 사주설명

개인적으로 식상이 과도한 사주팔자는 해석의 난이도가 어려운 편입니다. 관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상제살도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식상과다 난이도가 어려운 것은 비겁함과 관성의 역할 때문입니다.

사주에 절대적이고 단편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밥상과다냐에 따라서 그 모양이 굉장히 달라요. 이에 관해 설명하자면 북극성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에 위의 경우에만 한정해 보겠습니다.

우선 절대적으로 필요한 용신은 갑목입니다. 그러면 기신은 돈이 됩니다. 문제는 희신과 구신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먼저 희신을 결정하기 어려운 것은 이 사주는 매우 건조한 사주가 됩니다. 그리고 임수는 갑목을 길러줍니다. 모양 자체는 아주 좋습니다. 수생목, 목생화로 이어지니까요. 또 일부 학파에서는 여기서 수(관)가 식상의 기운을 설명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대요.

다른 곳에서는 관성이 들어오면 본체인 정화가 극신약이 되기 때문에 비겁한 화를 희신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북극성 학교는 어떻게 볼 것인가.

희신의 개념을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희신이 아니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래서 식상과다는 불행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결론은 무엇인가? 일단 희신은 화로에서 보는 게 맞아요. 하지만 다른 사주의 희신에 비해 장점이 떨어지고 단점은 더 많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용신목, 백신화라면 기신은 금, 구신은 수가 됩니다. 남은 건 토할 건데요.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한신은 보통 한가한 신이라고 해서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식상이 과잉인 경우와 많은 경우를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상당히 식상이 과도하면 거의 기신급에 준한 한신이 되어 버립니다. 앞으로는 밥상과 사주팔자가 어렵고 사주팔자를 종합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서를 보고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많은 간명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극성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사주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경우 상대방에게 과거를 질문합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간명을 위해서입니다. 정확한 과거의 적중을 통해 올바른 현재 분석과 미래 예측이 가능한 것이 명리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아무튼 배호 선생님은 식상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임수는 갑목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임수가 뿌리 없는 무정한 상태라는 겁니다. 물의 근원이 약해서 물은 마르고 물이 마르니 나무는 견디기 어렵고 나무가 약해지면 본체 정화는 죽게 됩니다. 이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또한 북극성학파에서 매우 중시하는 이론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축미충이 눈에 거슬립니다. 하지만 이 사주에서 크게 일할 여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혼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결혼하신다면 영원한 사랑을 하기 어려운 사주입니다. 아울러 어머니의 역량이 큰데, 그래서 고인의 어머니가 동생, 즉 배호 선생님의 외삼촌 덕분에 가수 데뷔를 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배호 선생님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도쿄대학교 수의학과를 나왔고, 어머니는 미션스쿨을 나왔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1955년 배호 선생 14세에 과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돌아가시고 배호 선생이 학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합니다. 만약 가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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