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필리핀 화산섬 9) 빈자리 남의 여행 에세이 <그래,

필리핀 화산섬에서

풋풋한 그 소리 ‘괜찮아요?’

2011년 2월 24일

묵묵히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산천을 보고 놀란 눈으로 푸른 산천을 본다. 가는 곳마다 별천지 같은 꽃들의 화려함은 영화 속 장면처럼 변한다. 한눈에 들어온 푸른 세계, 그것은 이국의 멋과 함께 기대로 채우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여행은 그래서 즐겁지만 설렘을 준다. 삶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환경을 바꿔보는 일이다. 그게 여행인 것 같아

필리핀은 아시아 동남쪽에 위치한 약 7000개의 섬으로 구성된 국가이다. 우리보다 훨씬 큰 땅에 많은 자연자원이 있다. 인구는 9,700여만명으로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계절이 없고 농경이 주를 이루며, 4모작에서 7모작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쪽은 모내기를 하고 다른 한쪽은 무성했다. 반면 누렇게 벼이삭이 여문 논도 있다. 튼튼하지 못한 작물, 쉴 틈을 주지 않는 연작법이 문제 아닌가. 기후 탓으로 차례차례 농작물이 재배되는 것은 거름 부족도 문제일 것이다. 연작해 일어나는 토양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잘살려고 열심히 곡식을 재배하는 이들의 손길은 바빠 보인다. 넓은 초원은 신이 내린 영원한 선물이다. 기후에 맞는 과일도 이들에게 내린 최고의 보고가 아닐까.

마닐라 시내에는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을 기리는 공원이 있다. 호세 리잘은 스페인 통치 시절 필리핀을 구하려고 앞장서 싸운 독립운동가다. 리자르 공원 내에는 산티아고 요새로 불리는 리자르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그가 처형될 때까지 산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필리핀인들은 그의 업적을 새기기 위해 최근 입구에서부터 처형장까지 발자국을 남겼다.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발자취는 필리핀의 아픈 역사를 남기고 있다. 그곳은 사람들이 그의 정신을 기리는 레저 공원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공원 내에는 리자르가 묵었던 곳이 있다. 숲이 우거지고 나무들은 곧게 자라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 봐야 할 만큼 웅장한 정원이었다. 근검 절약을 목표로 국민의 모범이 됐다는 그가 설 자리는 호화롭지 못했다. 한 바퀴 돌아온 시대를 포함한 역사의 장이었다. 그의 채취가 남긴 물건, 국민이 우상으로 모시는 호세 리잘, 나무와 숲이 그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남을 것이다.

2011년 2월 25일

마닐라 동남쪽 150km에 위치한 마그다피오 강으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낙차가 40m나 되는 폭포가 있다. 마닐라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 이름이 푹 꺼진 폭포다. 폭포 체험을 향한 우리의 발길이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의 강둑과 같다. 사공이 내미는 구명조끼를 옷 위에 걸쳤다. 그리고는 둑을 내려와 조각배처럼 긴 배로 4명이 일렬로 늘어섰다. 강은 아래로 흘렀다. 그러나 필리핀 사공은 강을 거슬러 노를 젓고 있었다. 방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공은 힘이 들어갔다. 강폭이 좁아지고, 물살이 거세졌다. 그들은 미끄러운 돌을 발로 밀거나, 거센 파도를 밀어내며, 벙커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아쉽고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굵은 땀방울이 그들의 검은 살갗으로 흘러내렸다.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여름날 강원 인제의 내린천 계곡에서 래프팅을 즐긴 적이 있었다. 마침 물이 적어서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매우 고생했다. 그때 우리는 함께 내려 물살을 따라 걸었다. 강바닥의 돌은 각진 것도 있었고 물살에 깎인 것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물 속을 걸었다. 작은 물고기가 날쌔게 달아나는 것을 보고 신이 나곤 했던 기억이 떠올라 머문다. 마닐라의 냇물에도 물고기도 있을 것이다. 그 물은 개울물과 같지 않았다.그렇게 오가는 개울 바닥은 험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듯 단순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당장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물은 깨끗했다. 그러나 역행하는 흐름은 깊었다. 그래서 사공이 더 힘들 것이다.

어렵게 방카를 끌어올려 거슬러 올라가는 뱃사공, 그것이 그들 나름의 삶이었다. 여행자의 눈에 다소 가엾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맨발로 험한 잠자리에 들 때마다 가해지는 아픔은 오늘뿐이 아닐 것이다. 사공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순간 아파졌다 급류를 거스르며 좁은 벙커를 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힘이 필요한 관광지. 연어가 알을 낳으려면 물살을 거슬러 제 살던 곳으로 올라오듯 지친 폭포 사공들은 살기 위해 흐르는 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지친 폭포까지 올라와 손님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 그 기쁨이 일을 끝낸 숙제처럼 가벼울 수 있다. 그들이 벙커 열쇠를 쥔 손에서 느껴지리라고는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직업도 제각각이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키를 잡은 입장과 손님으로서 바라보는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사공은 그 등에 생줄을 잡고 있다. 발가락에 피가 흘러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지상의 선물처럼 쏟아진 확실한 폭포였다. 불쑥 지나가는 정호승 시인의 ‘폭포 앞에서’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이대로 떨어져 죽어도 좋아 져도 좋아 져도 좋아 흩어져도 좋아 다시 만나서 울어도 좋아 울어도 좋아 결국 흘러 사라져도 좋아

끝까지 흐르지 않는 폭포 앞에서 내가 사랑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내가 포기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난 이제 미움조차 사랑스러워 소리 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돼 눈물 없이 떨어지는 폭포가 돼 머무를 땐 언제 떠나도 좋고 떠날 땐 언제든지 머물러도 좋아

“정호승 폭포 앞에서 전문”

나는 언제 이런 시어를 뱉을 수 있었던가. 이대로 떨어져 죽어도 좋아/떨어져 흩어져도 좋아. 시인의 아름다운 마음처럼 폭포를 바라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올라올 때 너무 힘들어하던 사공의 모습을 그려봤다. 살기 위한 그 괴로움이 한줄기 폭포처럼 눈물을 맘껏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삶도 사랑이었다. 감싸안는 따뜻한 사랑임에 틀림없다. 내 나라가 가져다 준 자연에 감사하고 외국인을 위한 헌신이라고 생각했다. 사공의 공헌감은 관광객에게 그 가치를 가져다 줄 터이니 기쁨을 주지 않을 리 없다. 물살이 점점 더 빨리 밀려왔다.

폭포를 바라보며 우리는 내려갔다. 지친 폭포는 연어로 변신한 원주민의 삶이 주는 시원한 보상이었다. 우리는 절로 환호성을 질렀다.시원한 물살보다는 물빛과 물빛이 어우러져 웅덩이를 향해 떨어지는 신의 선물이었다. 폭포는 가끔 여행지도 보았다. 배를 타고 돌면서, 또는 등산을 하면서 작은 물살에 환호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요란한 물줄기 앞에서 서로 물을 뿌리며 즐기는 사람들, 역시 놀이는 다양하다. 개성에 따라 폭포의 매력을 즐기는 관광객들 또한 볼거리였다.

세상에는 양과 음이 있다. 그에 따라 살아가는 세계인의 생활방식도 다양하다. 살기 위해 벙커를 밀고 올라오는 사공이 있고, 즐기기 위해 그 벙커를 타고 폭포를 만나는 여행객도 있다. 필리핀에서는 주로 체험여행을 했다. 밥상이 아닌 직접 차려먹는 밥상일 수도 있다 스스로 즐기는 여행, 덕분에 여행의 이모저모에 몸과 마음이 젖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화산재로 찜질 20분을 하고 천연온천수의 계곡에 들어가 온천욕도 즐기는 것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자연과 함께해 본 이런 것들이 마냥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원주민이 제공한 천연의 맛은 눈도 마음도 상쾌했다.

어디를 가나 원주민들은 아이들과 함께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험한 골짜기를 덜컹덜컹 달려간다. 시골에서 달구지를 타던 일이 생각났다. 짚차였지만 길이 험해서 빨리 달릴 수 없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길은 걷기도 불편한 길이었다. 군데군데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풀도 안 여무는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까. 조금은 궁금했다. 노천탕을 즐기기 위해 집이 있는 마을에 내려섰다. 그때 아이들이 먼저 알고 마중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아랫바지만을 걸치고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여자와 남자의 구별은 색깔부터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빨간 바지를 입었다. 어쩌면 일행일지도 모른다. 일행 중 아저씨가 초콜릿과 과자 봉지를 그들에게 내밀었다. 그들의 밝은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매우 예쁘고 시원해 보였다. 흰 치열이 너무 순박한 아이들

2011년 2월 26일

타가이타이 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산섬이 있다. 마닐라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화산으로 1572년 처음 분화한 뒤 40차례에 걸쳐 폭발했다고 한다. 언제 다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활화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화구와 호랑이 굴을 보유하고 있다. 필리핀의 전통 교통수단인 지프를 타고 고개를 넘어 초원의 숲으로 달려가야 한다. 스쳐가는 풍경은 개발되지 않은 신성한 초원이다. 그곳에는 뿔이 큰 소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달리는 지프니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우리는 지프에서 먼지가 피어오르는 길을 보고, 신기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마치 구경하듯 손가락질하며 웃고 있었다. 이색적인 놀이기구, 숨바꼭질을 하듯, 길을 구불거리며 즐겁게 달려간다. 덜컹거리지만 빨리 달리지 않았다. 길이 구불구불한데다 덜컹 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놀라서 가슴에 손을 얹기도 했다. 그 놀라움은 우리를 신기한 체험으로 이끌고 있었다.

화산이 만들어 놓은 호수치고는 너무 넓어서 널찍했다. 호수라기보다 바다 일부와 같은 수면 움직임에 마음을 빼앗겼다. 파도가 밀려오는 푸른 물더미 위에 물방울잠이 둥실둥실 따라온다. 그것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출렁이는 배 속으로 넘실넘실 파도가 일며 뱃전에 부딪친다. 우리는 소나기를 만나도록 물벼락을 맞아도 뭐!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타알 호수는 원주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지진 피해를 딛고 주민들의 거처가 된 자연스런 JR호. 그것이야말로 변형된 또 다른 지구의 모습이다. 여행자들에게는 새로운 풍경이자 흥미로운 곳이다. 원주민의 뱃노래에 호수의 물결이 춤추듯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여행은 새로운 환경 속에 파묻혀 가는 것이라고 한다. 마닐라의 타알 호수는 반갑게 가슴을 열어주었다.

호숫가에 내렸다. 포니를 끌어당겨 키 작은 사람들이 하나 둘 다가왔다. 여기에 얼마 남지 않은 원주민이라고 한다. 말 타본 경험이 한 번도 없어. 무서웠다. 말은 조랑말이기 때문에 무섭지도 않고 달리지 않는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조금 상하로 움직이긴 하지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고 한다. 나는 말을 쳐다보기보다 말 주인의 얼굴을 보았다. 말 주인의 인상이 좋으면 말도 순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키도 작고 눈은 퀭하다. 그러나 이들의 미소는 부드러워 보였다. 안내원이 아주 멋진 망아지니까 괜찮을 거라고 골라 주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문명이 만든 문화적 가치에 탐닉하기보다 필리핀 전통 탈것들은 호기심을 더했다. 그들이 익숙한 생활문화다 조금은 낯선 여행을 접하게 되었다. 산길, 말을 타고 오르는 길이 꼭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말을 몰아야 하는 길. 언덕을 오르거나 내리막길을 갈 경우 떨어질까봐 몸을 움츠렸다. 그때마다 마부는 깨닫고

“괜찮아?”라고 한국어 위로하는 법도 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는 그를 옛날 우리 집 아저씨처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울퉁불퉁하고 볼품없는 길을 난생 처음 말 위에 앉아 보는 것, 말이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내동댕이치는 것 같은 불안감에 몸은 흔들렸다. 1시간 30분 거리의 화산섬 길은 불안하기도 하고 신기한 체험이기도 했다. 혼자가 아닌 셋이서 해냈다는 기분은 최고였다. 첫 번째 탈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난 기분은 이랬다.

화산섬은 생각보다 넓고 큰 것은 아니었다. 남파로 백두산에 오를 때 보았던 그 광경과는 크게 달랐다. 같은 화산섬이라도 규모가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산폭발로 인한 곳이기 때문에 항상 지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활화산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화산폭발이 만든 필리핀 화산섬, 하늘색은 푸르다. 높은 곳에서 이렇게 깨끗한 물을 머금고 있는 필리핀 타가이타이 시의 화산섬, 그곳은 오늘도 세계를 향해 푸른 손짓을 하고 있다. 그의 곁에 서자 물바람인지 화산섬 특유의 바람인지 날아갈 듯 세차게 불었다. 한 건 해낸 기쁨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천천히 길을 걸어보았다. 모자가 날아갈 듯이 바람이 불었다. 날씨는 덥지만 화산섬의 바람은 시원했다. 우리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말을 탄 이야기, 말몰이군의 믿음직한 모습이라거나 이따금 눈치를 채고 던지는 한국어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말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다. 주인의 눈빛과 말소리만 들어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작은 화산섬을 오르내리는 말은 소중한 생계의 일원이기 이전에 한 가족의 구성원이었다. 휴식시간에는 무거운 안장을 놓았다. 그리고 털을 쓰다듬기도 하고 머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기도 했다. 그것은 마부가 자신의 말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마부는 그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인간애를 가진 소박한 휴머니스트였다. 동물을 내 가족처럼 안아준 그 마음의 길을 본 듯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소등을 쓸고 빗으로 빗어 주셨던 것처럼. 그러자 소도 나를 사랑하는 주인의 마음을 알 듯 눈을 깜박거렸다. 그렇게 말과 주인의 모습은 옛사람들을 불러들여 화목한 길이 됐다.

나라마다 독특한 상품들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역시 화산섬으로 가는 길은 위험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처음 탄 망아지, 그리고 마부의 너그러운 마음이 거친 길과 불편한 곳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다른 것이 있다면 혼자 원주민과 조랑말과 함께 했다는 자신감, 그것은 공헌감을 안겨준 여행이었다.

체험관광으로 유명해진 필리핀 화산섬은 아무래도 외딴 섬의 삶을 매달았던 5000km 교역로가 아니다. 그러나 생활을 이어가는 생계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언어를 이용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삶에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한 듯 당당했다. 나와 함께 있던 포니 주인도 자기 일에 충실했다. 게다가 한국어로 말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에 고마워했다.

화산섬 생각하면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독하십니까 하던 그의 어설픈 말이 정겹게 내 귀에서 모기처럼 울어댄다. 말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소통이다. 몇 마디 말로 나에게 준 것은 손님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었다. 정말 가슴이 내미는 그 언어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놀라서 소리쳤을 때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으세요? 어디 아파요?라는 말은 신선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2011년 2월 24일 28일

점심을 먹은 야외 레스토랑

노천탕을 즐길 수 있는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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